2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3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8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설교요약)
오늘 본문은 시처럼 은유가 많이 나옵니다. 순수하고 신령한 젖(2), 살아 있는 귀한 돌(4), 신령한 집(5), 신령한 제사(5), 거룩한 제사장(5), 택함받은 족속(9), 왕같은 제사장(9), 거룩한 민족(나라,9),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9) 등입니다. 급기야 '어두움과 놀라운 빛'(9)이라는 표현까지 나옵니다.
9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기이한) 빛으로 인도해 주셨다'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저 놀라운 빛 안에 살고 있습니까?'. 그 놀라운 빛은 무엇일까요? 놀라운 빛을 이해하기 위해 '빛이 없는 어둠'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어둠은 생명이 없거나 생명이 위축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전서 관점에서 로마시대의 박해도 어둠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넓혀서 기독교인이 살아가야 할 세상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세상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한계를 정확하게 뚫어보는 겁니다. 그 한계가 곧 어두움입니다. 기독교인은 절대적인 생명의 빛을 경험했기에 세상의 어둠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어둠을 알아야 빛을 느낄 수 있고, 빛을 경험해야 어둠을 뚫어 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말하는 놀라운(기이한) 빛은 무엇일까요? 빛은 구원을 가리키는 은유입니다. 놀라운 빛에 들어갔다는 말은 놀라운 구원을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빛 즉,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네 가지로 묘사합니다. 택함 받은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그것입니다. 5절에 등장하는 신령한 집,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도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우리의 삶을 위축시키는 세상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 즉, 새로운 존재를 가리킵니다. 고린도후서5:17 말씀으로 정리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과거의 자랑과 부끄러움이 다 시시하게 느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현재의 삶이 절정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겁니다. 이런 삶의 태도가 성령 충만입니다.
이런 말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생각할 분도 있을 겁니다. 현실은 여전히 고달프고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여러 가지 불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빛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눈을 바로 뜨고 보면 그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사사로운 일에 정신을 다 빼앗겨서 하나님의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놀라운 빛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 즉, 이 순간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절정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맙시다. 그것이 믿음이고 영성이고, 삶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빛을 잘 따라 갑시다. '너희는 택함 받은 족속이라'는 말씀 앞에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으십니까?' 택함 받은 족속',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다는 뜻임을 믿고 받아들이십시오.
설교본문: 베드로전서 2:2-10
설교제목: "어둠에서 놀라운 빛으로"
베드로전서 2장
2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3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8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설교요약)
오늘 본문은 시처럼 은유가 많이 나옵니다. 순수하고 신령한 젖(2), 살아 있는 귀한 돌(4), 신령한 집(5), 신령한 제사(5), 거룩한 제사장(5), 택함받은 족속(9), 왕같은 제사장(9), 거룩한 민족(나라,9),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9) 등입니다. 급기야 '어두움과 놀라운 빛'(9)이라는 표현까지 나옵니다.
9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기이한) 빛으로 인도해 주셨다'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저 놀라운 빛 안에 살고 있습니까?'. 그 놀라운 빛은 무엇일까요? 놀라운 빛을 이해하기 위해 '빛이 없는 어둠'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어둠은 생명이 없거나 생명이 위축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전서 관점에서 로마시대의 박해도 어둠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넓혀서 기독교인이 살아가야 할 세상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세상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한계를 정확하게 뚫어보는 겁니다. 그 한계가 곧 어두움입니다. 기독교인은 절대적인 생명의 빛을 경험했기에 세상의 어둠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어둠을 알아야 빛을 느낄 수 있고, 빛을 경험해야 어둠을 뚫어 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말하는 놀라운(기이한) 빛은 무엇일까요? 빛은 구원을 가리키는 은유입니다. 놀라운 빛에 들어갔다는 말은 놀라운 구원을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빛 즉,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네 가지로 묘사합니다. 택함 받은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그것입니다. 5절에 등장하는 신령한 집,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도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우리의 삶을 위축시키는 세상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 즉, 새로운 존재를 가리킵니다. 고린도후서5:17 말씀으로 정리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과거의 자랑과 부끄러움이 다 시시하게 느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현재의 삶이 절정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겁니다. 이런 삶의 태도가 성령 충만입니다.
이런 말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생각할 분도 있을 겁니다. 현실은 여전히 고달프고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하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여러 가지 불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빛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눈을 바로 뜨고 보면 그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사사로운 일에 정신을 다 빼앗겨서 하나님의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놀라운 빛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 즉, 이 순간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절정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맙시다. 그것이 믿음이고 영성이고, 삶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빛을 잘 따라 갑시다. '너희는 택함 받은 족속이라'는 말씀 앞에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으십니까?' 택함 받은 족속',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다는 뜻임을 믿고 받아들이십시오.